기업의 기후대응도 중요한 투자 정보…‘기후공시’ 아세요?

주영재 기자

국제 표준 확정에 국내서도 분주

기업들 “적용 늦춰달라” 읍소도

[주간경향] 기후변화가 대폭염·대홍수의 시대를 낳고 있다. 폭풍과 가뭄, 산불의 강도도 더해졌다. 극한기후는 경제활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 산불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이 급증하면서 미국의 부동산 재보험률은 지난 7월 1일 갱신일에 최대 50% 인상됐다. 지난 5월 미국의 대형 보험사인 스테이트팜은 산불이 잦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재산 및 상해보험 신규 가입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허리케인의 피해를 자주 입는 플로리다에서도 민간 보험사들이 철수하고 있다.

보험사만이 아니라 발전사, 철강·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도 기후 리스크에 크게 노출된 산업으로 꼽힌다.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좌초자산이 될 경우 이들에게 투자한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위협받는다. 기업이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 과정에서 큰 손실이 예상됨에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면, 투자자들이 이 기업에 투자할 마음은 전과 다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보가 아직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고, 기업 스스로도 제대로 제공할 유인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산불로 훼손된 숲에 심을 전나무 묘목이 2022년 8월 24일 미국 뉴멕시코 주립 대학의 존 T. 해링턴 임업 연구 센터에서 자라고 있다. AP연합뉴스

산불로 훼손된 숲에 심을 전나무 묘목이 2022년 8월 24일 미국 뉴멕시코 주립 대학의 존 T. 해링턴 임업 연구 센터에서 자라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기후공시 표준 나왔다

상황은 내년부터 달라질 전망이다. 기업의 기후대응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기후공시 혹은 비재무(ESG)공시의 국제 표준이라 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기준이 지난 6월 26일 확정됐다. 국제사회가 기후공시 제도화에 착수한 지 약 10년 만이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 산하의 ISSB는 이날 ‘S1’, ‘S2’로 불리는 두 기준을 발표했다.

‘일반적인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 요구안’으로 불리는 S1은 투자자가 투자를 결정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에 관한 공시 방법과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온실가스 다배출 상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관련 설비를 폐쇄하기로 결정할 때 기후 관련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이 조치와 이 결정에 따른 재무제표와의 연관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S2로 불리는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안은 기후와 관련한 중대 위험과 기회에 관한 정보의 공시를 요구한다.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물리적인 위험’과 저탄소 전환 관련 정부 규제나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전환 리스크’ 정보를 밝혀야 한다. 기후변화 적응과 대응 노력으로 신상품과 신사업 같은 ‘기회’가 발생할 때도 공시로 알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이 들어간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스코프3(제품 생산 과정만이 아니라 원재료 수급, 사용 및 폐기 단계도 포함)까지 공개해야 하는 기준과 함께 기업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ISSB의 기후공시 기준은 지배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 및 목표의 4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 권고안을 따른 것이다. TCFD는 주요 20개국(G20) 산하 금융안정위원회(FSB)가 기후변화 리스크를 금융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설립한 협의체다. 여기서 2017년 첫 기후공시 권고안을 만들었는데,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정보 공시와 더불어 금융기관의 대출, 투자 대상이 되는 기업의 기후변화 정보 공시를 권고하고 있다.

ISSB는 물론 유럽연합이 2014년부터 추진하는 ‘지속가능성 정보공개 의무화 방안(CSRD)’,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후공시지침은 공시대상, 시기, 인증 의무화 등에서 일부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이 TCFD 권고안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향후 기후공시의 표준은 ISSB가 주도할 전망이다. 이미 FSB는 TCFD가 담당했던 기후공시 진행 상황에 관한 모니터링 업무를 ISSB를 설립한 IFRS에 이관하기로 했다.

기후공시에서 공개하는 정보는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에 관한 모든 정보가 아니라 ‘중대한 정보’에 한한다. ISSB는 “어떤 정보에 대해 기업이 공시를 생략하거나, 잘못 진술할 경우, 또는 불분명하게 진술할 경우 재무제표를 이용해 투자 판단을 하는 투자자들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정보”를 공시 대상이 되는 중대한 정보로 본다. SEC가 2022년 3월 기업이 처한 기후변화 위험과 영향을 의무적으로 연차보고서와 증권신고서에 담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다만 그 영향이 해당 회계연도의 매출액과 비용, 자산, 부채 등 총항목의 1% 미만에 미치는 정도라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화석연료 사용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7월 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화석연료 사용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기후변화 관련 정보도 재무정보

기후공시는 지금까지 비재무정보였던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보가 재무정보와 같은 가치로 취급된다는 뜻이다. 경영의 언어인 회계와 회계기준에 기후변화의 영향이 정량적·정성적으로 반영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공시 토론회에서 “기후공시 제도는 금융안정성과 실물경제 보호의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면서 “(G20은) 2008년 금융위기가 금융기관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리스크 평가 실패에 기인했다고 보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산가치 변화도 금융시스템의 안전성과 실물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재무적으로도 반영되지 않아 투자자나 기업이 기존의 의사결정을 바꿀 유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기후공시가 주주의 이해관계와 인류·생태계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봤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향후 기후위기와 관련한 위험, 대응전략 등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면, 탄소가격으로 그 위험의 정도를 재무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기존의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는 원래 하던 대로 위험을 측정하고 기대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다. 온실가스 배출 정도에 따라 기업의 미래 재무상태와 현금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을수록 기업의 잠재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그 위험을 고려하면 투자를 할 가능성은 낮아지고, 기업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할 유인은 커진다.”

예를 들면, 탄소를 배출할 ‘쓰레기봉투’(탄소배출권)를 국내에선 지금 무려 90%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지만, 앞으론 유상할당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배출비용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에너지 전환과 공정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큰 손실을 맞을 수 있다. 가령 현재 2차전지 바람을 타고 포스코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지만, 기후공시와 탄소배출권 가격 현실화가 이뤄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포스코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기업으로 연평균 직접 배출량(스코프 1)은 7700만t 정도다. 이 배출량에 유상할당 100%를 적용하고, 탄소 가격이 유럽 수준인 1t당 약 100달러라고 하면, 포스코가 부담해야 할 탄소배출 비용은 77억달러(약 9조8000억원)에 달한다. 포스코 철강 부문의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영업이익(약 3조원)의 3배가 넘는다. 기후공시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에스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석유화학시설 투자도 추진하기 어려워진다. 샤힌 프로젝트의 경우 매년 300만~500만t의 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기환 책임운용역은 “신규 투자와 관련한 엄격한 비재무정보 공시가 의무화돼 있고, 탄소가격제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과연 에스오일이 이러한 투자결정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후공시 적용 시점 당겨야

대기업 중심으로 지속가능보고서가 발표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나 전력 소비량을 비교 분석할 플랫폼이 부족하고, 구체성도 떨어진다. 자사에 유리한 정보만 담아 기업의 홍보수단이 됐다는 비판도 받는다. 반면 ISSB나 미국 SEC 공시기준은 외부 환경이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에 주안점을 두고, 공시 이행의 강제성이 짙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SEC의 공시기준은 국내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SEC의 기후공시 대상은 미국 내 거의 모든 주식회사와 미국에서 증권을 발행하려는 외국 회사에 적용되는데 삼성전자와 한국전력, 포스코홀딩스 등 10개의 한국 기업은 미국에 동시 상장형태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신지윤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기존 상장기업들은 까다로운 미국 SEC 공시 규정에 익숙한 편이나 전반적으로 법적 위험 수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ISSB 공시기준을 따라 한국회계기준원이 산하에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두고 기후공시 기준을 마련 중이다. KSSB의 ESG 공시기준은 연내에 확정 발표될 예정이다. 2025년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7년 자산 1조원 이상, 2029년 5000억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30년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의무화 대상을 확대한다.

그간 경영계를 중심으로 공시 적용 시점을 늦춰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실제 ISSB 등의 적용 시점에 비해 1~2년 늦는 쪽으로 정해지는 분위기다. 신 전문위원은 “정보 공개 기준의 글로벌 정합성 유지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재계의 완화적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현재의 낮은 산업부문 감축 목표와 탄소배출권 가격을 감안하면 한국 기업의 위험이 과소평가될 여지가 높고,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국 기업의 재무정보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기보다 기업 스스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관련 공시 정보도 지금처럼 데이터 처리가 어려운 PDF 파일로 공개할 게 아니라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시제도 법제화도 논의 중이다. 이용우 의원이 지난 6월 24일 대표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ESG 의무 공시를 2024년 사업보고서부터 순차 적용해 2026년 전 상장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미국 SEC 기후공시지침 도입이 원래 예정보다 늦어지는 건 의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정부 주도로 추진 중이기 때문인데, 이런 점을 감안해 우리도 의원입법을 통해 공시제도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 비중을 보면 국내 제도를 늦춰달라는 건 사실 무의미하다. 차라리 공시제도를 빨리 도입하고, 적절한 지원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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