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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충분했다》
4등
나는 언제나 4등이었다.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 같았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달렸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나도 그곳에 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누군가는 충분히 잘했다고 했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위로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결과였다.
이제는 조금 지친다.
포기했다고 하기에는 미련이 남고,
계속하겠다고 하기에는 마음이 무겁다.
그저 한동안은
아무것도 증명하고 싶지 않다.
1등에게는 이름이 남고,
2등에게는 아쉬움이 남으며,
3등에게는 희미한 기억이라도 남는다.
4등은 그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 남는다.
아마 내 인생도 그랬을 것이다.
분명 간절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마저 잊히겠지.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이름을 남기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내 이름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았을까.
오늘도 나는 4등이었다.
내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슬픔마저 익숙해졌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4등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는지도 모르겠다.
범재(凡才)
사람들은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무언가를 얻은 사람들이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을 이야기했고,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설명해야 했다.
세상은 결과를 좋아했다.
과정은 성공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훈장이었다.
나는 오래도록 달렸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고,
남들보다 늦게까지 남았다.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몸이 지칠 때까지 반복했다.
그러나 결과가 없자
아무도 그것을 노력이라 불러 주지 않았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 내 앞을 지나갔다.
그들에게는 재능이 있었고,
나에게는 노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노력하면 좁혀질 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지나가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내가 믿었던 말들은 하나씩 낡아 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간절한 사람에게 길은 열린다.
적어도 그 말을 믿고 살아온 사람들의
도착지는 같지 않았다.
성공한 사람은 운도 실력이라 말하고,
실패한 사람은 운을 탓하지 말라 한다.
노력의 가치를 말하면서
보상받지 못한 노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승자를 존경하고
패자를 분석한다.
같은 길을 걸었어도
한 사람은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은 실패 사례가 된다.
나는 범재였다.
천재도 아니었고,
특별히 선택받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게으르지도 않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시간만큼은 그랬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구분에 관심이 없었다.
결과가 없는 노력은 기록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노력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된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간절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
언젠가 나도 사라질 것이다.
나를 앞질렀던 사람들도,
나를 뒤따르던 사람들도,
그들이 지키려 했던 순위도.
결국 모두 같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군가는 박수를 받고,
누군가는 박수를 쳐야 한다.
그것이 세상이 말하는 공정함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이해하려 하지 않겠다.
나는 충분히 달렸다.
세상은 충분히 잔인했다.
그리고 어느 쪽도
서로에게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낙오자(落伍者)
처음부터 뒤처질 생각은 없었다.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섰고,
남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누구나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달렸다.
넘어지면 일어났고,
뒤처지면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앞서가는 사람들의 등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시 멀어진 줄 알았다.
조금만 더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갔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서로의 성취를 축하했다.
나는 그곳에 없었다.
누군가는 물었다.
왜 멈췄느냐고.
설명할 수 없었다.
멈춘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었다는 말을.
달릴 수 있는 사람에게
멈춤은 선택이지만,
달릴 수 없는 사람에게
멈춤은 결과였다.
한때는 나도 누군가를 앞질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저 다른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포기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경쟁에는 끝이 없었다.
한 사람을 넘어서면 다른 사람이 있었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도착은 끝이 아니었고,
성공은 다음 경쟁의 입장권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 가야 했을까.
누구를 이겨야 충분했을까.
얼마나 높이 올라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달리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나를 낙오자라고 불렀다.
이제는 그 이름을 고쳐 부르지 않겠다.
이름이 바뀐다고
지나온 시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오늘도 사람들은 달린다.
누군가는 앞서기 위해,
누군가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그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도착하기 위해 달린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내가 멈춘 것인지,
세상이 나를 두고 간 것인지는
이제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전부였다.
편견
사람들은 저마다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너는 부상을 입었으니 운동을 못 할 것이고,
너는 징계를 받았으니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고.
그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얼마나 견뎌 왔는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바로잡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의 부상은 나의 한계가 되었고,
한 번의 징계는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설명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래서 조금 더 노력했고,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려 했다.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일어서도
사람들은 넘어졌던 순간을 기억했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도
과거의 실패를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번 만들어 놓은 생각을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다.
이제는 설명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를 잘못 기억하더라도
굳이 찾아가 정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억까지
책임질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조금만 더 오래 증명했더라면 알아주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까지
잘못이었던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람들은 나를 판단했고,
나는 그 판단을 바꾸려 했다.
결국 변한 것은 나였고,
그들의 생각은 그대로였다.
실패
우리는 언제나 실패한다.
넘어지고 좌절하며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죽을 듯이 노력하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몇 번이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무언가를 이루기도 한다.
나는 성공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내가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달린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끝내 도착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시간은 무엇이 되는 걸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면
그것은 정말 실패일까.
나는 아직도 성공을 원한다.
그러나 언젠가
그것을 내려놓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걸어온 길을
부끄러워하고 싶지는 않다.
성공을 바라며 살아왔지만
성공만을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 나는 다르게 부르기로 했다.
실패가 아닌,
과정이라고.
성공
성공이란 무엇일까.
남보다 앞서가는 것일까.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루는 순간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것도,
누군가와 웃으며 보내는 것도,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도
모두 살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성공을 너무 멀리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살아가는 순간에도
성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을 살아낸 것,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하는 것.
어쩌면 성공이란
도착해야 얻는 결과가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
우리는 죽었을 때 많은 것을 남긴다.
추억과 평판,
자녀와 재산,
배우자와 친구들.
그리고 사람들은
남겨진 것들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한다.
누군가는 성공했고,
누군가는 실패했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많은 것을 가졌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거지도, 부자도,
평범한 사람도,
홀로 생을 마감한 사람도.
모두 태어났고,
각자의 시간을 살아냈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었고,
누군가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누구의 인생이 더 가치 있었는지
판단할 사람은 없다.
대단한 것을 남기지 못했다고
대단하지 않은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며,
기억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았던 삶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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