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계선 (1)

오늘도 눈을 떴다. 귀에 에어팟이 꽂혀 있는 걸 보니 어젯밤에 노래를 듣다가 잠들었나 보다. 눈이 부어있는 걸 보니 울다가 잠들었나 보다. 기지개를 키고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마치 어깨에 무거운 걸 메고 있는 듯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가기 싫은 학교를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엄마가 나에게 아침밥을 먹고 가라며 소리친다.


“한서린~ 밥 먹고 가.”


속도 안 좋고 먹기도 싫어서 안 먹겠다고 했다.


“안 먹어.”


“그래 먹지 말든지.”


“안 먹겠다고 했잖아.”


난 엄마가 참 싫다. 별로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아서 얼른 가방을 싸고 다녀오겠다는 인사는 생략한 뒤 잽싸게 집을 나섰다. 계단으로 내려가기 귀찮아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하염없이 기다려도 안 오길래 그냥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8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고 아파트 출입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감싸안는다. 


밖에 눈이 오고 있었다. 난 눈이 참 좋았다. 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런걸까.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얕게 쌓인 눈을 밟으며 학교로 향했다. 어렸을 때는 눈만 내리면 집에서 뛰쳐나와 쌓인 눈을 밟고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젠 눈오는 날에 차마 하늘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멍을 때리다가 학교에 도착했다. 교문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니 너무 일찍 나온 것 같았다. 교무실을 들려 출석부를 들고 반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옆반 출석부를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얼른 다시 교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옆반 남자애가 출석부가 없어서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애한테 출석부를 말없이 건네어 주고 우리반 출석부를 들고 다시 반으로 갔다. 뒤에서 날 쳐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교실로 가서 내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창가자리 맨 끝 쪽이라서 수업시간에 딴짓하기 좋은 자리다. 자리에 앉아서 후드를 뒤집어쓰고 옆 창문을 열고서는 눈이 운동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봤다. 눈을 보며 멍을 때리면 시간이 퍽이나 잘 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건지도 모르겠지만 벌써 반 애들이 하나 둘씩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들어와 아침 조례를 하셨다.


“자 얘들아 벌써 방학이 다가오네? 곧 있으면 성적표 1학기 꺼랑 합산해서 나올거고 독서록도 그 전까지 열심히 쓰는 게 좋겠어. 내년에 너네 중3이야. 생기부 꼭 잘 챙기고 좋은 고등학교 가길 바란다. 남은 시간은 다들 조용히 할 거 해라.”


성적표는 거들어 보기도 싫었다. 사실 난 작년까진 공부를 잘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두 성적이 상위권이었고 성적표만 받으면 모두 A였다. 초등학교 때도 무슨 대회만 나가면 상을 타 왔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런데 현우가 없어진 이후로 난 마치 떨어진 거울처럼 깨졌다. 현우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갑자기 사라지니 내가 무너질 수밖에.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여자애들은 무리를 지어 떠들고 있었고, 남자애들은 복도로 나가 놀고 있었다. 혼자 앉아있는 건 나뿐이었다. 난 친구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애들은 얼굴도 예쁘장한 애가 왜 친구가 없냐고 가끔 수군거린다. 현우 이후로 친구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나에게 다가오는 애가 있어도 등을 돌린다. 우리반 인기녀 한설이가 한 때 나에게 친해지자며 손을 내밀었는데 난 거기다 대고 한설이에게 차갑게 굴었다. 한설이는 내가 봐도 참 따뜻하고 좋은 애다. 그런데 난 그런 애한테 못되게 굴었다. 생각해보면 난 참 나쁜년 같다. 좋은 애도 내 적으로 만드는 게 참. 


오늘 시간표가 역대급으로 지루했다. 과학 역사 도덕 수학.. 더는 말할 것도 없다. 수업시간 종이 치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난 책만 펴두고 벽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ㅡㅡ


보슬보슬 눈이 오는 밤, 학원이 끝난 뒤 난 너와 수다를 떨며 집으로 걸어간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신호등을 건넌다. 그런데 우리를 향해 갑자기 검정색 자동차가 달려온다. 너가 나를 밀친다.


끼이이익ㅡㅡㅡㅡ 쿵ㅡㅡ


너의 몸이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난 구급차 소리에 눈을 뜬다. 너의 머리에서 피가 흐른다. 넌 왜 일어나지 않는걸까. 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눈이 감겼다.


ㅡㅡ


난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15분밖에 안 지나있었다. 주변 애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래. 꿈이었다. 그렇다고 다행인 건 아니다. 꿈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재생하는 기능이 있던가? 난 너가 생각나서 눈물을 안 흘릴래야 안 흘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었잖아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