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부-학과 칸막이 없애… 신입생 모두 ‘無전공 선발’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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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규제 개선]
내년부터 학부-학과 규제 등 폐지
1학년 전과 허용… 現고2부터 적용
의대 예과-본과 운영도 자율화

대학이 각 학문 분야를 학과와 학부로 나눠 운영해야 한다는 규정이 내년부터 사라진다. 학과 간 장벽이 철폐되면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무(無)전공’ 입학을 시행하는 대학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과 2년+본과 4년’으로 운영해온 의대는 대학 현장의 요구를 받아들여 ‘6년 자율 구성’으로 바뀐다.

28일 교육부는 대학의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고 29일부터 입법 예고에 들어갔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대학이 학과나 학부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유로운 형태로 신입생 선발, 학교 운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공학과, 심리학과 등 ‘학과’ 또는 자율전공학부, 경영학부 등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뽑지만 앞으로는 학과나 학부 없이 ‘A대 1학년’으로도 선발할 수 있다.

학과를 바꾸는 ‘전과’는 그간 2학년부터 허용됐지만 이제 1학년(2학기부터)도 할 수 있게 된다. 또 각 대학은 전과를 신청하는 그해에 생긴 ‘신설 학과’로는 기존 재학생들의 전과를 제한해 왔지만 교육부는 이를 허용하기로 했다. 가령 ‘국어국문학과’ 2학년 재학생도 신설된 ‘융합언어학과’ 1학년으로 전과할 수 있다. 다만 기존 학과로의 전과 제한은 대학별 학칙에 따라 유지된다. 의대, 공대 등 인기 학과 쏠림을 막기 위해서다.

의대는 총 6년 과정 안에서 대학이 자유롭게 구성하거나 통합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예과에서는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등 교양을 배우고, 본과부터 본격적인 의학 지식 습득 및 수련을 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예과 1년+본과 5년’, ‘예과 2년+본과 3년+인턴 1년’ 식의 운영도 가능해진다.

이번 개정안은 8월 8일까지 입법 예고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된다. 다만 현재 고3에 해당하는 2024학년도 대학 신입생 선발 계획은 올 4월 확정돼 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재 고2인 2025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된다.

의대 ‘2+4’ 대신 자율 운영… 학점 25% 기업 현장서 취득 가능


‘학부-학과 칸막이’ 폐지
‘예과2+본과3+인턴1년’이나 ‘예과1+본과5년’식 운영도 가능
“낡은 학과틀론 융복합 인재 한계”
온라인 수업만으로 학위 딸수도

교육부가 학과와 학부의 칸막이를 허물고 대학의 자율권을 확대한 것은 그동안 한국 대학이 과도한 대학 규제로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산업 구조는 급변하는데 대학들은 1900년대에 설계된 낡은 학과 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미래 사회에 걸맞은 융복합 인재를 기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 학과 장벽 사라지면 ‘융복합 교육’ 가능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학과 간 칸막이가 없어지면서 학생들의 흥미와 적성에 맞춘 새로운 설계 전공이나 융합 전공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은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할 경우 역사 관련 강의 위주로 수업을 듣지만, 앞으로 전공 구분이 없어지면 동아시아 역사 공부에 필요한 일본어, 한문, 경제학, 정치학 등을 선택해 이수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정한 전공에 맞춰 공부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학생이 하고 싶은 공부를 대학에서 지원해 주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도 기존에는 ‘중국어과 소속’ 혹은 ‘경영학부 소속’ 식이었으나 앞으로 학부, 학과가 사라지면 ‘서울대 소속’ 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지지부진했던 전공 간 공동 연구나 융합 수업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일부 대학들은 이미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실험을 해오고 있다. 이화여대, 성균관대, 서울대, KAIST, 한동대 등 5개 대학은 학과가 아닌 단과대나 학부 단위로 신입생을 우선 뽑고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학부’, ‘단과대’의 최소한의 틀은 유지하고 있다. 교육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남은 장벽까지 허물고 이러한 운영 방식을 더욱 확대시키겠다는 것이다.

● “의대 바뀌면 의사과학자도 늘 것”

의대는 예과와 본과로 나뉘어 운영됐으나 앞으로는 6년짜리 단일 학제로 바뀐다. 예과와 본과를 통합할 수 있게 된 것. 그동안 예과 수업은 교양 수준에 머물러 비교적 여유 있게, 반대로 본과 수업은 각종 전공 지식 공부에 실습까지 겹쳐 매우 숨 가쁘게 운영됐다. 이 때문에 의대들은 “본과에 학습량과 실습이 집중돼 있어 상대적으로 예과 기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며 규제를 풀어 달라고 요구해 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6년’ 안에서 각 의대가 자유롭게 학제를 구성할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임상 전 3년+임상 3년’, 독일 뮌헨대는 ‘임상 전 2년+임상 3년+인턴십 1년’으로 운영 중이다. 해외 의대들은 갈수록 현장 실습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업 과정이 다양해지면 의사뿐만 아니라 의사과학자 배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들이 산업체(기업)나 연구기관 시설에서 ‘학교 밖 수업’을 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내년부터 대학들은 산업체나 기관과 협약을 맺고 ‘협동 수업’을 할 수 있다. 졸업 학점의 4분의 1 범위 안에서 실제 산업 현장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가령 고려대 컴퓨터학과와 삼성전자가 협약을 맺고 여름 학기 동안 9학점 수업을 개설해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온라인 과정 확대… 외국서도 국내 학위

지금은 첨단 학과에만 허용된 ‘온라인 100%’ 학위 과정이 전체 전공으로 확대된다. 교육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도 대학은 원하는 대로 온라인 학위 과정을 개설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은 학교에 굳이 가지 않고도 온라인 수업만으로 학위를 딸 수 있고, 해외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온라인 학위 과정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국 대학과 외국 대학이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된다. 현재는 여러 해외 대학과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제한이 풀린다. 공동 교육과정의 졸업 학점 인정 범위도 대학이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이번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계기로 대학의 혁신을 가로막는 각종 통계 및 평가 기준까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영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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