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이슈 브리핑
국내의 한 석탄화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국내의 한 석탄화력발전소. 사진=연합뉴스
전 오바마 행정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마이클 그린스톤 시카고대학 교수는 2010년에 탄소의 사회적비용(social cost of carbon)을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중요한 숫자”라고 말했다. 이후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을 계기로 탄소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많은 사람이 경각심을 가지면서 탄소의 사회적비용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대기 중에 추가적으로 배출되는 탄소 한 단위에 의해 발생되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손실을 화폐 단위로 추정한 것이다. 외부성이 없는 경제행위의 경우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에서 균형이 형성되고, 이때 형성되는 균형 가격과 소비량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이 된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탄소배출이 수반되는 경제행위가 일어나는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 소비량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을 초과하게 된다. 이처럼 외부불경제가 발생하는 경우 정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수준으로 소비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미치는 외부성을 추정해 그만큼을 탄소가격 형태로 부과해야 한다. 따라서 개념적으로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탄소배출로 인해 유발되는 외부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180~240유로로 추정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대기 중에 배출되는 탄소 한 단위가 경제·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에 모델링하는 것이 쉽지 않다. 탄소배출은 태풍, 홍수, 해수면 상승, 가뭄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생물다양성 등 계량화하기 어려운 경제적·사회적·환경적 현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제학자들은 기후 모형과 경제 모형을 결합한 기후·경제 통합 평가 모형을 이용한다.

그런데 기후·경제 통합 평가 모형을 이용해 추정된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모형에 따라 편차가 크다. 기후·경제 통합 평가 모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많은 가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탄소배출로 인해 심각한 기후변화가 일어날 확률,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 범위와 정도, 할인율 등에 대해 가정해야 하는데 어떤 가정을 채택하느냐에 따라 탄소의 사회적비용 추정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래 기술의 발달 수준과 속도, 인구구성의 변화 등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변수에 대해서도 가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탄소의 사회적비용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할인율이다. 할인율은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변환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미래와 현재 간 상대적 중요성을 반영한다. 탄소중립 측면에서 보면 할인율이 높을수록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 피해의 현재가치가 작아지므로 현재 세대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거나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일 유인이 줄어든다. 반면 할인율이 낮으면 현재 세대는 미래에 발생할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탄소배출 감축 노력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따라서 할인율 수준은 현재와 미래세대 사이에 자원을 배분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주요국이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추정하고 있으나, 각 나라가 제시한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나라마다 매우 다르다. 2019년 독일 환경청이 추정한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1%의 할인율을 적용할 경우 2015년에 180유로, 2030년에 205유로, 2050년에 240유로였다. 그리고 영국 녹림환경부가 2003년에 추정한 사회적 탄소비용은 2020년에 90파운드, 2030년에 100파운드, 2040년에 110파운드, 그리고 2050년에 130파운드로 크게 상승한다.

미국은 탄소의 사회적비용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2016년에 발표한 오바마 행정부의 보고서에서는 탄소의 사회적비용이 3% 할인율을 적용할 때 2020년에 42달러, 2030년에 50달러, 2040년에 60달러, 그리고 2050년에 69달러로 추정되었다. 2017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재추정했는데, 이때 추정된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탄소배출 1톤당 8달러였다. 그러다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일 행정명령을 통해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재추정하도록 했다. 이때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3% 할인율을 적용할 때 2020년에 51달러, 2030년에 62달러, 2040년에 73달러, 그리고 2050년에 85달러였다.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그에 관한 논의와 활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우리나라도 공식적으로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추정해 발표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2015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할인율 3% 기준으로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2만6600원으로 시사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가 없다. 탄소의 사회적비용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우리 경제에 어느 정도 경제적 효용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한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산출은 매우 중요하다.

기업도 내부 탄소가격제 나서야

두 번째는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내부화해야 한다. 내부 탄소가격제(internal carbon pricing)란 기업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탄소배출량에 대해 내부적으로 책정한 가격을 적용해 투자를 결정할 때 참고하는 제도다. 기업이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하면 탄소배출이 많은 고탄소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저탄소 부문으로 사업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12년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한 이후 엑손모빌, 쉘, BP 등 에너지 기업들이 내부 탄소가격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부터 KT&G,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들이 내부 탄소가격제를 도입했다.

세 번째는 공공투자 사업의 경제성 분석에서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여러 주정부는 정책을 결정할 때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반영하고 있다. 뉴욕과 일리노이 주정부는 에너지 전환 및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지원을 결정할 때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적용하며, 콜로라도·미네소타·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인프라 건설 등 공공사업에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공투자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할 때 탄소의 사회적비용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방식이 필요하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